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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난초이야기.5
가리왕산이야기 조회수:972 183.108.129.120
2021-04-16 10:36:46

2.

아직 경부고속도로가 2차선이던 시절,

대여섯 시간을 달려 장성호 인근의 야산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겨울이었지만 난초를 품은 야산은 새벽녘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아침 밥 짓는 연기가 고즈녁한 마을 뒷산을 감싸 안으며

평화롭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매캐하지만 싱그럽기만 한 연기 냄새와

상큼한 솔향기를 헤치며 오솔길을 따라 마을 뒷산으로 접어듭니다.

산에서 풍겨오는 싱그러움,

난초를 채집한다는 기대감에 들 뜬 처음의 산행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지천에 깔린 보춘화는 다투어 꽃을 피우며 긴 운전에 피로한 우리를 반기는 듯 했고

준비해 간 난초 채집용 갈고리로 처음 난초를 캐기 위해 부엽토를 걷어낼 때

뿌리에서 풍겨오는 부엽토 향기는 얼마나 향기로웠던지요.

이렇게 시작된 난초와의 인연으로

눈이오나 비가 오나 매 주 일요일 새벽이나 공휴일 새벽이면

난초에 미친 일행들과 어울려 도시락 하나 싸들고

어김없이 난초 채집 여행을 떠났습니다.

안면도를 비롯해 지리산 등지의 전라도, 남해 등지의 경상도 해안과

내륙에 이르기까지 안 가 본 산이 없을 정도로

전국의 산야를 헤매며 보춘화의 변이종 채집활동을 하였습니다.

공치는 날이 더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난초를 보는 안목은 깊어갔습니다.

춘란과 한란, 혜란 등의 동양란 서적을 구입해 공부하고

틈만 나면 서초동에 즐비하던 난초 가게들을 방문하여

실물을 익히며 난초의 예(藝)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습니다.

실물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지요?

특히, 모든 예(藝)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의 심미안(審美眼)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는 과학적 연구 논문이 있기도 하지요.

세월이 흐르며 아파트 베렌다의 3단 난대에는 500여분(盆)의 난초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직접 채란한 난초와 매달 한 번씩 있는 서초동의 난초 경매장과 

난초애호가들이면 누구나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종로5가 길바닥의 노점상 등으로부터 구입한 난초들이지요.

 

난이십이익(蘭易十二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난초 애호가라면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내용입니다.

동양란의 성향과 배양에 관한 특징을

12가지로 요약한 중국 명나라 때 단계자(簞溪子)의 저서에 이르는 말입니다.

첫째는 희일이외서(喜日而畏署)입니다.

햇빛이 잘 드는 것은 좋아하나 너무 더운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지요.

둘째는 희풍이외한(喜風而畏寒)입니다.

잔잔한 바람은 좋아하나 추운바람은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셋째는 희우이외료(喜雨而畏潦),

촉촉하게 내리는 비는 좋아하나 강하거나 지루한 장마비는 싫어한다는 의미입니다.

넷째는 희윤이외습(喜潤而畏濕),

적당히 수분이 도는 것은 좋아하나 너무 습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희건이외조(喜乾而畏燥)입니다.

분속의 뿌리는 적당히 건조한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물주기 삼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귀한 난초라고 너무 물을 많이 주어서 습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난초를 키운다는 말도 있지요.

여섯째는 희토이외후(喜土而畏厚)입니다.

난초의 뿌리는 야생에서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난초를 채집할 때는

난초의 벌브부분에서 옆으로 부엽토를 걷어내며 떠 올리게 됩니다.

일곱째는 희비이외탁((喜肥而畏噣)입니다.

모든 식물과 마찬가지로 과다한 영양이 난초에도 좋을 리 없습니다.

여덟째는 희수음이외진(喜樹陰而畏塵)입니다.

나뭇가지사이로 흘러드는 약한 햇빛은 좋아하지만

직사광선이나 먼지는 싫어 한다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희난기이외연(喜暖氣而畏煙)입니다.

겨울에는 난초도 동면을 하지만 분속이 얼지 않게 적당한 온기가 필요하겠지요.

난 잎을 가끔 닦아 주는 것은 난초의 동화작용을 돕는 것이지요.

당연히 먼지나 매연은 싫어한다는 의미입니다.

난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썩 좋지 않습니다.

열 번째는 희인이외충(喜人而畏蟲)입니다.

난초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지요.

열 한 번째는 희취족이외이모(喜聚蔟而畏離母)입니다.

대주(大株)로 모여 있는 상태를 좋아하므로

지나친 포기나누기는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열 두 번째는 희배식이외교종( 喜培植而畏驕縱)입니다.

난초는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어렵게 생존하지만

오히려 인간에게 배양을 위탁함으로서

사랑받으며 안전하게 종을 번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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