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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난초이야기.7
가리왕산이야기 조회수:1036 183.108.129.120
2021-04-23 06:14:04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말합니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라고도 말하지요.

낚시에 걸린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노인이 되뇌는 강열한 투혼의 독백입니다.

비록 상어 떼에 고기를 다 뜯겨 먹힌 채 앙상한 뼈만 배에 매어달고 항구로 돌아오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인과 돛새치와의 사투는 투쟁으로 얼룩진 도시에서의 생존의 현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빈 배로 돌아갈 지언 정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도 전쟁터와 같은 도시를 벗어나야합니다.

‘꽃향기에 취해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는 이백의 흉내를 내며

전원에 묻혀 난과 더불어 시를 쓰며 삼선(詩仙, 蘭仙, 酒仙)의 풍류 속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지요.

가히, 광풍제월(光風霽月),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삶이 거기에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막연히 꿈만으로 이루어 질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전원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평소에 공부하고 싶었던 국어국문학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통대에서 나이 50이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노장과 공맹을 읽고, 논문을 쓰고 이백과 두보도 만났습니다.

농사도 지어야하니 농학과에 편입하여 농학도 공부를 했습니다.

귀촌, 전원학교와 황토학교도 수료하며 건축과 전원생활의 전반에 걸쳐 공부하며

건축박람회도 수없이 쫒아 다녔습니다.

남도의 녹차 밭을 순례하며 다도(茶道)도 배웠고

이천 등지의 도예방을 다니며 도예(陶藝)체험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전원의 터를 잡기 위해 동남아지역이나 남도쪽 시골마을을 탐색하기도 하였습니다.

벽(癖)에 들린 시간이었지요.

三仙의 터전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한 기회에 가리왕산자락에 마련되었습니다.

토지의 용도가 그렇게 많은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토지 구획과 설계를 마치고 첫 삽을 뜨기까지 이미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가리왕산이 나를 머슴으로 부리기 위해 터를 만들어 준 것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지요.

모든 준비는 마쳤지만 생존의 도시생활을 접는 데는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귀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가족의 동의를 받는 일일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으므로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의 동의를 받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터전이 마련되고 상상 속으로 수없이 집을 지었다 허물며

집사람 설득을 위하여 봄가을로 긴 여행을 데려 다니는 등 공략에 나섰지만

마지막엔 결국 혼자만 오게 되었지요.

이기적 유전자는 꼭 결정적일 때 작동을 하며 분란을 일으키지요.

어찌되었든 잔소리 안 들어 편하긴 한데 섭생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성회관에서 요리강습을 받으며

근근히 섭생을 해결하며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완전히 다시 모셔 오기까지는 5년여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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