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가리왕산이야기 > 사랑방

게시글 검색
나의 난초이야기.9
가리왕산이야기 조회수:281 183.108.129.120
2021-05-03 10:18:43

'모름지기 산을 뒤에 두르고 시내를 앞에 둔 집을 그려주시게

온갖 꽃과 대나무 천 그루를 심어 두고, 가운데로는 남쪽으로 마루를 터 주게.

그 앞뜰을 넓게 하여 패랭이꽃과 금잔화를 심어 놓고, 괴석과 해 묵은 화분을 늘어놓아 주시게.

동편의 안방에는 휘장을 걷고 도서 천 권을 진열하여야하네.

구리병에는 공작새의 꼬리 깃털을 꼿아 놓고 비자나무 탁자위에는 박산향호를 얹어 놓아주게.

서쪽 방에는 창을 내어 애첩이 나물국을 끓여 손수 동동주를 걸러 신선로에 따르는 모습을 그려 주게.

나는 방 한가운데에서 보료에 기대어 누워 책을 읽고 있고,

자네와 다른 한 벗은 양옆에서 즐겁게 웃는데,

두건과 비단신을 갖춰 신고 도복을 입고 있되 허리띠는 두르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야 하네.

발 밖에서는 한 오리 향연이 일어나겠지.

그리고 학 두 마리는 바위에 이끼를 쪼고 있고,

 '산동은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어야하네. 이러면 인생의 일이 다 갖추어진 것일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명당 터에 자리를 잡고

정경일여(情景一如)의 삶을 꿈꾸었던 허균이

친구인 산수화가 이정에게 그려 달라고 하였던 풍경화는 끝내 그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리왕산의 관아재와 그 앞마당에 펼쳐진 전경은

과연 허균이 꿈꾸었던 ‘인생의 모든 일이 다 갖추어 졌다’는 이상적 풍경화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관아재의 안방 문을 열어 놓고 비스듬히 누워 어거스틴의 고백론과 퇴계의 자성론,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있으면 허균이 상상속에 그렸던 풍경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더하여 난초의 현란한 향연 속에 시를 짓고 애첩이 따라주는 동동주는 아니더라도

난실을 찾는 난인들과 주연을 즐기면 비로써 인생의 모든 일을 이룬 것입니다.(계속)

 

 

 

 

 

댓글[0]

열기 닫기

이미지명
이미지명
상단으로 바로가기